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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 쌍문동 가족들의 따뜻한 성장기

by jadu79 2025. 6. 21.

“가족과 이웃은 같은 말이 아니야.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이웃은 선택할 수 있거든.” <응답하라 1988>을 본 사람이라면, 드라마 곳곳에 녹아 있는 이런 ‘생활의 철학’들이 자연스레 가슴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에서 함께 자란 다섯 친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복고극도, 연애 성장드라마도 아니다. <응팔>은 그 시절의 웃음과 눈물을 빌려와 우리가 놓치고 있던 관계의 온도를 조용히 되묻는다.


많은 드라마가 가족을 이야기하지만, 이처럼 이웃까지 끌어안는 서사를 이토록 따뜻하게 풀어낸 작품은 드물다. 쌍문동이라는 실제 장소를 무대로, 매일같이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다섯 가족의 일상은 놀랍도록 평범하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든다. 요즘 세상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이웃 간 정, 부모 자식 간의 숨겨진 마음, 서툰 고백과 말하지 못한 사랑이 1988년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2025년에도 여전히 이 드라마를 기억하고, 때로는 다시 찾아보며 눈물짓는 걸까?

 

이제부터, <응답하라 1988>이 우리 마음속에 남긴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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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 쌍문동 가족들의 따뜻한 성장기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이웃은 선택할 수 있어요” – 쌍문동 골목의 특별한 ‘공동체’

드라마의 무대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골목. 좁은 골목을 따라 나란히 붙어 있는 다섯 채의 집에는 서로 다른 개성과 사연을 가진 가족들이 산다.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 동룡이네, 택이네. 다섯 집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가족처럼 매일같이 밥을 나누고, 아이들을 같이 키우며, 때로는 싸우고, 또 금세 화해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공동체’의 모습이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이웃은 선택할 수 있어요.” 이 말은 드라마 초반, 쌍문동의 다섯 가족이 얼마나 서로에게 깊숙이 스며든 존재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누군가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이웃, 마치 삼촌이나 이모 같은 옆집 어른, 형제처럼 자란 친구들.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단순한 ‘이웃’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덕선이네 엄마가 택이네 밥상을 챙기고, 동룡이네 아빠가 선우에게 용돈을 슬쩍 쥐여주며, 선우 엄마가 정환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아니다. 이웃이 가족이 되는 순간의 디테일한 감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선우의 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우며 느낀 외로움은 이웃들의 보살핌 속에서 조금씩 사라진다. 생일날 조용히 미역국을 끓여주는 정환 엄마, 힘든 날 말없이 국 한 그릇 건네는 이웃의 손길.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오랜 세월 함께 쌓아온 시간이 이웃을 또 다른 가족으로 만들어준다고. 쌍문동은 그런 연대감이 가능했던 시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연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 시절, 우리는 그저 행복했다는 걸 몰랐다.” – 웃으며 지나온 시절의 뒷모습

<응답하라 1988>을 관통하는 가장 절절한 메시지이자,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떠올릴 때 자주 마음속에 맴도는 말이다. 드라마는 추억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의 불편함과 부족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자는 모습, 브라운관 TV 앞에서 돌려가며 채널을 돌리는 손길, 손편지를 쓰기 위해 매번 편지지를 꺼내던 소소한 장면들.

 

하지만 그런 불편함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은 지금보다 훨씬 진하고 선명하다. 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말투 속에 담긴 무심한 사랑,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에 담긴 정성,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골목길에서 놀다 지친 몸으로 돌아가던 발걸음.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와서는 눈물 나게 그리운 ‘행복’이었다는 것을 드라마는 조용히 일깨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덕선이 학교에서 상을 받았을 때, 정환의 엄마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안아주는 모습이다. 당시에는 그저 '엄마 친구'였던 존재가, 누군가에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또 다른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보는 이의 마음까지 먹먹해진다. 또 하나의 장면. 겨울밤, 덕선과 친구들이 골목에서 함께 불꽃놀이를 하며 환하게 웃던 그 순간. 그때는 몰랐지만, 그 웃음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이었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그 시절을 특별하게 만든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일상의 무게였다.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 학교에 가고,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친구와 소소한 비밀을 나누던 그 나날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생을 가장 단단하게 만들어준 순간이었다. <응팔>은 그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여주며, 지금의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던지는 한 줄. “그 시절을 우리는 그저 지나왔을 뿐이었다.” 그 말은 결국, 그 시절을 살아낸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시절을 함께한 너희가 있었기에” – 다섯 친구의 우정과 사랑

드라마의 중심축은 다섯 명의 친구들이다. 덕선, 정환, 택, 선우, 동룡. 이 다섯 명은 같은 골목에서 자란 ‘찐친’이다. 서로를 놀리고, 때로는 치고받고 싸우지만, 결국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편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시청자들은 마치 이 친구들의 여섯 번째 멤버가 된 듯, 그들의 대화와 눈빛, 오해와 고백, 그 모든 성장의 과정을 함께 겪는다.

 

특히 정환과 택, 그리고 덕선의 삼각구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묵직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말할 수 없는 정환, 덕선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택, 그리고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덕선. 이들의 얽히고설킨 마음은 많은 시청자들의 과거의 첫사랑, 그리고 아직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정환은 드라마 초반부터 덕선을 향한 마음을 품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다. 그 서툼은 단순한 말주변 부족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조심스러움, 관계의 균열을 두려워하는 깊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는 덕선의 생일에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고, 덕선을 태워주기 위해 버스를 쫓아 뛰지만, 정작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한다. 그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 ‘말 못 한 짝사랑’의 얼굴과 닮아 있다.


반면 택은 정환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말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덕선을 향한 마음만큼은 한결같고 진심이다. 그는 좋아한다는 말을 망설이지 않고 전하며, 정환에게도 정면으로 감정을 고백한다. “나, 덕선이 좋아해. 많이.” 그 한마디는 시청자들의 심장을 쿵 하고 울린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지만, 한 번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지는 택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다.


덕선은 그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감정이 복잡한 이유는 단순히 누굴 더 좋아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둘 다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이기에, 자신의 선택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 모습은 사랑 앞에서의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다. 덕선은 단순한 '연애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조율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형을 고민할 줄 아는 인물이다.


또한 <응팔>이 다른 연애드라마와 차별되는 점은,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 ‘사랑’이 아니라 ‘우정’과 ‘가족’이라는 점이다. 연애는 서사 중 하나일 뿐, 이들의 중심에는 항상 서로를 향한 신뢰와 의리가 있다. 정환이 끝내 마음을 접고 조용히 물러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 중 하나다. 덕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택과의 우정을 선택한 것이며, 그 선택은 그가 얼마나 깊은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택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먼저 정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승부가 아니라 진심을 이야기한다. 덕선은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감싸며 중심을 잡는다.


결국 이 삼각구도는 ‘누가 덕선을 선택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감정을 대하고, 관계를 지켜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안엔 첫사랑의 아릿함과 친구를 향한 미안함, 성장통과 배려가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연애의 설렘을 넘어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지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숙한 감정의 드라마. 그것이 <응답하라 1988>의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단순한 복고극도, 단순한 가족 드라마도 아니다. 이 작품은 관계에 대해, 기억에 대해, 그리고 사랑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깨닫는다. 지나간 시절이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특별했음을.


쌍문동이라는 공간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골목이다. 그곳에서 나를 불러주는 목소리,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소리, 같이 게임하자며 들이닥치는 친구의 얼굴,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주던 이웃들. 2025년을 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응답’은 어쩌면 그 시절처럼 살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에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시간. 그것이 <응답하라 1988>이 남긴 진짜 유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