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드라마다. 로맨스인 듯하면서도 사회 드라마 같고, 가족극인 듯하면서도 스릴러다. 특히 이 드라마가 유난히도 시청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단 하나의 장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의 깊이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은 황용식(강하늘 분)이다. 동백(공효진 분)을 향한 그의 사랑은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의 로맨틱한 구애와는 다르다. 그는 이상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 어디에선가 정말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이다. “착해서 멋있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황용식은 그 질문에 가장 솔직하고 유쾌한 대답을 주는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황용식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이 어떤 감동을 남겼는지를 짚어본다.
“내 사랑은요, 용식이법이에요” — 직진 순애보의 정석
황용식의 사랑은 한마디로 ‘용식이법’이다. 누구의 방식도 아닌, 그저 자기 방식대로, 서툴지만 정직하게, 때론 눈치 없지만 미련하게 밀고 나가는 사랑. 그의 첫 등장은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동백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착해서 좋아요”라는 이유 하나로,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처럼 다가간다.
상대가 경계하거나 피하는데도, 용식은 그런 반응을 자신의 감정에 대한 반성으로 삼기보다는 ‘그럴 수 있으니 더 기다려야지’라는 식의 낙천적인 접근을 한다.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무모함이야말로 용식이만이 할 수 있는 진심의 방식이었다.
“동백씨는요, 어마어마하게 예쁘진 않아요. 근데… 그냥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어요.” 그의 이 말은 외모 중심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용식은 동백의 단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점까지 끌어안는 사람이다. 상대의 사회적 조건이나 주변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더 용기를 낸다. 동백을 향한 마음은 소유나 통제의 욕망이 아니라, 보호하고 함께하고 싶은 ‘존재의 지지’로 다가선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동백이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주눅 들었을 때다. 용식은 그 말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사람이 뭘 잘해야 사랑받나요?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던데요”라고 답한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조건’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서사’를 함께 지켜보고 싶어 한다.
또한 용식이의 사랑은 행동이 빠르고, 말보다 먼저 움직인다. 동백이 시장에서 곤란한 일을 겪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언제나 뒤늦게라도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고, "동백씨 힘들게 하지 마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의 이 ‘무대포 직진’은 단순한 로맨스의 전형이 아니다. 그는 사랑을 관념으로 표현하지 않고,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는 일상’으로 실천한다.
용식이의 사랑은 타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언제나 ‘동백씨가 웃는 얼굴’이 기준이다. “내 마음은요, 동백씨 편이에요”라는 명대사는 단순히 연애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용식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단 한 번도 동백의 과거를 문제 삼은 적 없고, 동백의 현재를 수습하려 들지 않으며, 오직 그녀의 미래 곁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만을 보여준다.
현실을 이겨낸 사랑, 모성보다 앞선 헌신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여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홀로 아이를 키우고, 마을의 술집을 운영하며,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묵묵히 살아가는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동백도 가끔은 흔들리고,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릴 때가 있다. 황용식이 특별한 이유는, 그 무너지려는 순간에 “내가 붙들어줄게요”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볍고 감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함께 짐을 나눠 지겠다는 실질적인 헌신으로.
특히 필구와의 관계에서 용식의 진심이 깊이 드러난다. 많은 남자들이 동백의 삶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장애물처럼 여겼을 때, 용식은 오히려 필구와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내가 필구 아빠는 못 되지만, 필구 편은 될 수 있어요”라는 대사는 단순한 로맨틱한 대사가 아니라, 현대 가족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말이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 모델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편이 되어주는 존재'로서의 가족을 제안하고, 사랑이 혈연을 넘어선 곳에서도 충분히 존중받고 안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헌신은 단지 동백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백의 엄마 정숙과의 관계에서도 그가 어떤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숙은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세상과 맞서 싸우는 방식은 거칠고 날이 서 있다. 용식은 정숙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의 있고 정직하게’ 다가간다. “
동백씨 삶에 엄마가 중요한 만큼, 저는 이제 그 삶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입니다”라는 태도로, 그는 동백과 그 가족 전체를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전체’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무엇보다 용식의 헌신은 그 어떤 조건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동백이 사랑을 망설이는 이유가 “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라면, 용식은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매일을 ‘내가 지고 갈게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로 표현하기보다, 매일 동백이 마주할 문제들 앞에 함께 서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가게에 누군가가 불만을 제기하면, 용식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에 함께 개입한다. 동백이 아이 문제로 속을 태우면, 그는 멀리서 아이의 자전거를 손보며 지켜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하다는 말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존재로 곁을 채운다.
이런 용식의 태도는, ‘모성이 위대하다’는 기존 드라마의 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드라마는 사랑이 반드시 대단한 사명이나 희생이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진심을 가지고 매일 누군가의 일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안에서 용식은 '모성'이라는 상징적인 역할을 넘어선다. 그는 한 여성과 그 아이의 삶 전체를 지켜주려는 보호자이자 동반자이며, 또한 누군가가 스스로를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지지자다.
황용식의 헌신은 그저 착하고 순한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세상의 편견과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의 다른 표현이다. 그는 동백이 무너지지 않게 옆에서 버텨주는 기둥 같은 존재이며, 사랑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른이다.
사랑도 용기도 “그냥 내 식대로” — 황용식이라는 인간
황용식은 정의감에 불타는 ‘마초’ 경찰도 아니고, 세련된 도시형 남자도 아니다. 그는 촌스럽고 솔직하고, 때로는 눈치 없이 들이대는, 말 그대로 사람 냄새나는 인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솔직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동백꽃 필 무렵>이 가진 힘은 바로 이 ‘촌스러움의 미학’이다. 용식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늘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는 그냥 동백씨 편이다.” 그 말은 위로이자 약속이고, 행동의 근거였다.
특히 까불이 사건이 터지고,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질 때, 누구도 나서지 못했던 순간에 용식은 오히려 ‘겁나지만, 안 무서운 척하고 지키겠다’고 말한다. 용식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사랑은 거창한 희생이 아닌, 매일매일 선택하고 감당하는 고백이었다.
심지어 동백에게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돼요?”라고 묻는 장면은, 사랑을 소유나 보호가 아닌 ‘함께 만들고자 하는 삶’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 진심이, 황용식을 단순한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아닌, 누군가의 진짜 삶에서 닮고 싶은 사람으로 만든다.
많은 드라마가 사랑을 말하고, 많은 캐릭터가 순애보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은 그 어떤 서사보다 오래 남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드라마 안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 편이 되어주는 그 단순함. 그것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더 용기이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가 끝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동백씨 편’이라고 말하는 황용식의 목소리는 귀에 선하다. 어떤 위로보다 진한 사랑, 어떤 결심보다 따뜻한 헌신. 황용식은 그걸 ‘촌스럽게’ 실천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 사랑을 떠올리며 웃는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동백씨 편 드는 거예요.” 그 한마디가 우리에게 남긴 건, 사랑이란 결국 마음을 담은 행동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