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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모성, 연쇄 살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마음에 남는 이유

by jadu79 2025. 7. 7.

2019년 가을, 전 국민을 웃기고 울리며 브라운관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한적한 바닷가 마을 옹산에서 벌어지는 한 싱글맘과 경찰의 로맨스를 그린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물이 아니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시선, 보통 사람들의 작고 소박한 상처,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연쇄살인범까지.

 

다양한 감정선과 장르가 얽히며 매회 놀라움을 안겨주던 <동백꽃 필 무렵>. 시간이 흘러도 자꾸 다시 떠오르는 이 드라마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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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모성, 연쇄살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마음에 남는 이유

 

'까멜리아'를 지키려는 동백과 황용식, 그리고 까불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 ‘옹산’을 배경으로, 싱글맘 동백(공효진)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백은 어린 아들 필구를 혼자 키우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옹산은 보수적인 시선이 강한 시골 마을이고, ‘술집 여주인’이라는 직업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 쉬운 위치다.

 

주민들은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동백의 과거를 들먹이며 수군거린다. 동백은 그 모든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려 애쓴다.


그런 동백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 바로 황용식(강하늘)이다. 옹산 파출소로 발령받아 온 용식은 정의롭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인물이다. 첫눈에 동백에게 반한 그는 서툴지만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 “동백 씨는요, 그냥 막 사람 미치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라는 대사처럼, 용식은 사회적 편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백을 향한 사랑을 드러낸다. 그의 직진 고백과 흔들림 없는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큰 위로이자 감동을 안겼다. 그는 동백이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로 흐르지 않는다. 초반부터 불안한 기운을 자아내는 인물, 바로 ‘까불이’가 있다. ‘까불이’는 과거 옹산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긴 시간 동안 잡히지 않은 채 지역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해온 존재다.

 

처음에는 과거 이야기인 듯 흘러가던 까불이의 서사는, 현재 동백의 주변을 맴도는 기묘한 상황들과 맞물리며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까멜리아 근처에서 수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익명의 협박 편지가 도착하며, 동백은 자신과 필구에게 닥쳐오는 위협을 감지하게 된다. 마치 까불이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용식은 이 상황에서도 단호하다. 그는 동백과 필구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평소엔 다소 어수룩한 면이 있었던 용식이지만, 위험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집요하게 사건의 실체를 쫓는다. 그는 경찰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동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지 ‘멋있는 남자’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려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한편, 동백의 삶에도 새로운 변수들이 더해진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의 생모 정숙(이정은)은 과거 동백을 버리고 떠났던 인물이다. 암 투병 중인 정숙은, 남은 시간 동안 딸과 손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듯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까불이’ 사건과 무언가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동백은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지만, 정숙의 진심 어린 행동과 헌신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이 모녀의 관계 회복 과정 또한 드라마에서 가장 뭉클한 감정선을 형성한다.


결국 까불이의 정체는 예상 밖의 인물로 밝혀지며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드라마는 단순한 반전보다, 그 존재가 동백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동백은 숱한 편견과 위험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고 아들을 지켜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자신을 믿어준 용식이 있었다. '까멜리아'는 단지 술집이 아니라, 동백이 삶의 터전이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사랑보다 더 강한 감정, ‘엄마’라는 말의 무게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가장 강렬하게 관통하는 감정은 ‘모성’이다. 로맨스도, 스릴러도,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동백은 누군가의 딸이기 이전에, 필구의 엄마로서 존재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손가락질받고 외면당하면서도, 단 한 순간도 아들 앞에서 무너질 수 없었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지만, 자신은 아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자 했다.

 

이 드라마에서 동백이 보여주는 모성은 그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기를 선택하고,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을 배워간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필구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고, 어른들에게 상처받았을 때 동백이 그를 품에 안고 말하던 순간이다.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엄마가 대신 사과할게. 대신 울어줄게. 그러니까, 우리 필구는 울지 마.”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동백은 아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아이에게 눈물 대신 웃음을 주기 위해 택한 방식은 ‘강한 척’이 아니라,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동백의 사랑은 필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필구는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예민하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아온 그는, 세상과 엄마 사이에서 일찍부터 현실을 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구는 엄마를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고, 엄마가 무시당하거나 상처받을 때마다 앞장서서 막아선다.

 

“우리 엄마는 술집 하는 여자가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엄마예요.” 어린아이의 이 대사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단단한 마음을 가진 아들로 자랐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필구야말로, 동백의 모성이 만들어낸 가장 강한 결과물일지 모른다.


여기에 정숙이라는 인물의 서사는 또 다른 결을 더한다. 동백의 생모인 정숙은 과거에 딸을 버리고 떠났던 사람이다. 동백에게 정숙은 존재조차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이며,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상처다. 그런데 그런 정숙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온다. 그것도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과 함께. 드라마는 이 모녀의 서먹하고 삐걱대는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정숙은 말수가 적고 투박하다. 눈물로 호소하거나 감성에 기대지 않는다.

 

하지만 딸과 손자를 위해 점점 변해간다. 음식에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도 아무렇지 않게 국을 먼저 떠먹는 장면, 딸 몰래 병원 치료를 받으며 마지막까지 까불이를 추적하는 장면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정숙은 극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동백은 울면서 말한다. “엄마는 왜 항상 그렇게 뻔뻔하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픈 거예요?” 하지만 그 말에는 서운함뿐 아니라 존경과 애정이 담겨 있다. 정숙은 세상 누구보다 단단한 방식으로 딸을 지켜낸다. 엄마이기에, 딸을 다시 품고 싶었기에,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 싸움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까불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로맨스 속 스릴러, '까불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랬을까?

<동백꽃 필 무렵>이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로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까불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까불이는 극 초반부터 정체를 숨기고 등장하며 시청자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안긴다. 한편으론, 이 살인마의 존재가 동백의 일상을 위협함으로써, 그녀가 겪는 사회적 외로움과 불신이 더욱 부각된다.


흥미로운 점은, 까불이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등장인물 누구도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력자처럼 보였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의심받으며, 시청자들은 매회 누가 진짜 악역인지 추리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는 폭력성과 무관심, 그리고 공동체의 민낯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결국 밝혀진 진범은, 놀랍게도 늘 주변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 반전은 "착한 사람들이 만든 무심함이 더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악인은 멀리 있지 않다. 무시하고 외면했던 사람,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어냈던 사람.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건 결국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이 스릴러 요소를 통해, 단순한 감성팔이나 낭만적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어두운 이면을 찌른다. 약자에게 무심한 사회, 말 없는 폭력,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사랑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단단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참 묘한 드라마다. 따뜻한 사랑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늘한 공포도, 짠한 눈물도 담겨 있다. 주인공 동백은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사람이다.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를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엄마’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동백, 정숙, 그리고 동백을 지켜주는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가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더 많이 묻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