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을 처음 접했을 때, 대부분은 ‘복수극이겠지’, ‘조직과 경찰 사이의 언더커버 이야기겠지’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맞다. 겉으로 보기엔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1화를 시작하면 곧 이상한 긴장감에 빠진다.
‘왜 이렇게 낯설지?’ ‘왜 이 캐릭터가 눈에 밟히지?’ 그 낯섦은 이 드라마가 ‘익숙한 이야기’를 얼마나 다르게 풀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나는 익숙함을 비틀어 낯선 감정을 만든 드라마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작품은 기존 범죄 드라마들이 그려온 남성 중심의 조직 구조, 여성 액션의 클리셰, 장르 안의 성역할 등을 아주 정교하게 비틀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낸다. 윤지우가 칼을 들고 조직에 들어가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지 복수의 서사가 아니라, 정체성과 생존, 그리고 진짜 ‘자기 이름’을 되찾는 여정을 담는다. 그리고 그 여정을 둘러싼 모든 배경 요소들—조직의 스타일, 공간감, 음악, 의상—모두가 캐릭터와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이번 글에서는 <마이 네임>이 기존 장르 공식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했는지를 ‘범죄 조직 묘사’와 ‘여성 액션 클리셰 비틀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해보고, 동시에 드라마 곳곳에 숨겨진 시대적 감각과 트리비아 요소들을 문화적으로 되짚어보려 한다.
동천파는 전형적인가? 아니, 이상할 만큼 ‘현대적’인 조직
<마이 네임>의 범죄조직 ‘동천파’는 외형상으로는 전형적인 마약 카르텔처럼 보인다. 수장인 최무진은 절대 권력을 가진 듯 보이고, 부하들은 철저한 서열 구조 안에서 움직이며, 불법 유통망과 경찰 내부의 스파이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직이 흥미로운 이유는 ‘클래식함’이 아니라 ‘모호함’에 있다.동천파는 명확한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 흔히 한국 범죄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욕설과 분노가 난무하는 조폭 이미지’가 거의 없다.
대신 동천파는 무진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매우 조용하게 움직이고, 외형도 깔끔하다. 사무실은 넓고 세련됐고, 복장도 슈트 중심이며,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도 효율적이다. 마치 한 기업을 연상케 하는 구조다. 이 점은 무진이라는 캐릭터와도 연결된다. 그는 폭력적 수장이 아니라, 전략가이자 프로파일러처럼 행동한다. 그는 사람을 협박하거나 위협하기보단, 약점을 이용해 조용히 길들이고 유인한다.이런 묘사는 조직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악’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고, 현대 사회 속 회색지대처럼 그려낸다.
특히 윤지우가 처음 조직 훈련을 받을 때의 분위기나, 내부 감시 체계는 마치 군사조직이나 특수요원 양성기관처럼 세밀하다. 그녀가 버텨내는 조건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지속적인 통제와 심리적 조작이다. 이는 조직이 단순히 외적인 폭력성을 넘어서, 사람의 내면까지 침식하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설정이다.특히 무진이 지우에게 신분을 주고 경찰로 보낼 때의 과정은 영화 <무간도>의 한국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차이는 ‘지우는 선택당한 게 아니라 선택했다’는 데 있다. 그 선택은 철저한 자발성에 기반해 있고, 그 과정이 너무도 절박하기에 조직은 비로소 그녀의 생존 방식이 된다. 이처럼 동천파는 단순한 악의 축이 아니라, 지우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기 위한 틀로서 기능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조직=악’이라는 단순 도식을 넘어서 생각하게 만든다.
여성 액션의 새로운 해석: 섹시함이 아닌 생존의 방식으로
<마이 네임>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여성 액션의 묘사 방식이다. 윤지우는 섹시하지 않다. 적어도 기존 장르물에서 말하던 ‘여성 액션 히어로의 섹시함’은 이 작품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그는 짧은 머리도 아니고, 가죽 옷을 입지도 않는다. 복장은 대부분 후드티, 레더 재킷, 청바지. 실용적인 옷과 단단한 운동화. 헤어스타일도 딱히 스타일링되지 않고, 얼굴은 매 회차마다 멍과 피, 상처투성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윤지우를 진짜 ‘액션 주체’로 만들어준다.그녀는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싸움은 늘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다. 남자처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윤지우’가 싸우는 것이다. 그 방식은 거칠고 단순하며, 칼과 맨몸, 그리고 타이밍에 의존한다. 주먹이 닿는 순간에는 감정이 실리고, 눈빛에는 복잡한 정서가 엿보인다.
이 모든 묘사는 ‘여자니까 이렇게 싸운다’가 아니라, ‘이 사람이 지금 이렇게밖에 싸울 수 없다’는 절박함을 담는다.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있는 드라마에서 종종 범하는 실수가 있다. 액션 속 감정이 사라지거나, 감정 속 행동이 흐릿해지는 경우다.
하지만 <마이 네임>은 그 사이 경계를 정확히 지킨다. 윤지우는 액션을 통해 감정을 발산하고,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또다시 싸운다. 그 이중 구조가 그녀를 ‘여성 히어로’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서사를 가진 인간’으로 만든다.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몸은 무너지고, 감정은 쏟아지지만, 끝까지 그녀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여성이 단순히 피해자나 복수의 도구가 아닌,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주체로 기능하며, 액션의 논리를 감정과 연결시키는 구조. 이건 단순한 클리셰 비틀기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여성 주도형 서사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감성적 디테일과 트리비아: 음악, 공간, 색채가 전하는 정서
<마이 네임>은 장면 하나하나가 감정적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액션이나 대사뿐 아니라, 공간, 조명, 음악, 색채 같은 비언어적 장치에서도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배경음악. 백예린의 '왜 나는 항상'은 극 후반 윤지우가 무진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오열하며 방을 떠나는 장면에 삽입되는데, 이 음악은 기존 복수극에서 흔히 듣던 긴장감 넘치는 OST가 아니라, 상실의 정서를 담은 서정적인 곡이다. 이 한 곡이 극 전체의 감정을 정리하며, ‘이건 복수 그 이상의 이야기’라는 걸 암시한다.
또한 공간도 흥미롭다. 동천파 사무실, 경찰서, 무진의 집, 윤지우의 아파트 등 주요 공간들은 모두 극단적으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특히 무진의 공간은 깨끗하고 차가운 반면, 경찰서는 무질서하고 어둡다. 윤지우의 공간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침대 하나뿐인 방인데, 이는 그녀의 정체성과 감정을 대변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으려는 사람,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복수에만 몰두하는 인물의 내면이 공간으로 시각화된 것이다.
트리비아로는 드라마 속 윤지우의 액션 장면 대부분을 한소희 본인이 직접 소화했다는 점도 빠질 수 없다. 3개월 이상의 액션 훈련, 몸무게 감량, 전투술 기본기 습득 등 한 배우가 이룬 성취가 작품을 훨씬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무진 역할의 박희순은 실제 촬영 전 조직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며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한다. 이런 디테일의 축적이 드라마의 리얼리즘을 높이고, 감정 몰입도를 강화시킨 핵심 요인이 된다.
<마이 네임>은 확실히 장르물이다. 장르의 공식을 따라가되, 그 공식을 스스로 깨버린 작품 . 복수, 범죄, 액션, 언더커버, 조직, 비밀, 반전. 우리가 이미 수없이 봐온 키워드가 여기 다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익숙한 요소를 빌려오되, 전혀 다른 감정으로 해석한다. 동천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윤지우의 생존 수단이 되고, 여성 액션은 성적인 판타지가 아닌 비정한 현실 감각으로 전환되며, 주인공의 복수는 ‘정의 구현’이 아니라 ‘존재 증명’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모든 과정이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그 어떤 거대한 스케일이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윤지우의 한숨, 눈빛, 칼날 하나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드라마가 기획 단계부터 감정을 중심에 두고, 장르를 감정을 전달하는 장치로 활용했다는 증거다.<마이 네임>은 하나의 장르물을 넘어, 클리셰를 비틀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 드라마다.
강하고 복잡한 여성 주인공, 비주얼보다 설계가 중요한 조직 서사, 음악과 색채로 밀도 있는 감정을 채운 장면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오래 남는다. 단순히 ‘재미있었다’가 아니라,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다’는 말로 남는 작품. 결국 이건, 이름을 잃은 이가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였고, 그 이름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여성 서사의 가능성도 함께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