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라고 느꼈던 순간은, 단연 그 ‘비주얼’ 때문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은 수없이 많지만, <킹덤> 속 좀비는 뭔가 다르다. 낡은 저고리를 입고, 핏기 없는 얼굴에 핏줄이 터진 눈동자, 바싹 마른 입술과 광기 어린 몸놀림. 그리고 그 주변에 깔린 고요한 조선의 풍경. 그 상반된 조합은 강렬한 공포감뿐 아니라 묘한 아름다움을 남긴다.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는 단순히 ‘K-좀비’의 창의성 때문만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전통 문화, 한국의 미학을 깊이 있게 녹여낸 영상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좀비의 움직임부터 의상과 분장, 사운드, 조선의 풍경과 건축까지. 하나하나가 공포를 넘어서 예술처럼 느껴졌던 <킹덤>.
이번 글에서는 <킹덤>의 좀비 메이크업과 전통 의상,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어떻게 ‘문화 콘텐츠’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마치 직접 현장에서 본 것처럼, 그 디테일한 미장센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좀비를 ‘한국적으로’ 만드는 법: 분장과 움직임의 디테일
<킹덤>의 좀비는 단순히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무섭다는 감정을 넘어서 ‘불쾌할 정도로 생생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 공포의 실체는 단순한 피와 살의 묘사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좀비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느낌, 한국인의 정서와 움직임, 역사적 배경이 모두 얽혀 있는 좀비라는 점이 깊은 공포를 만든다.
제작진은 <킹덤>의 좀비를 설계할 때, 단순히 외국 좀비물을 참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조선 시대 사람들의 몸에 맞는 좀비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먼저 ‘몸의 움직임’부터 다르게 접근했다.
좀비 역을 맡은 단역배우들과 스턴트 연기자들은 본 촬영에 앞서 3개월 이상 ‘움직임 워크숍’을 거쳤다. 이 워크숍은 단순히 ‘무섭게 걷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무용 전공자, 한국무용가, 무속 동작 전문가까지 참여해, 몸의 뒤틀림과 비틀림, 그리고 통제되지 않은 팔다리의 떨림을 체계적으로 훈련했다.
특히 인상 깊은 건 ‘각성 장면’이다. 죽은 자들이 해가 지면 서서히 되살아나는 장면에서 좀비들은 단숨에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몸이 부서질 듯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이 꺾이고, 팔이 비틀리며, 몸이 옆으로 뒤집힌 채로 기어 나오는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고, 동시에 기묘한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장면은 안무에 가깝다. 실제로 이 장면들을 촬영할 때에는 카메라 앵글에 맞춰 군무를 짜듯이 좀비들의 동선을 조율했다고 한다.
분장 또한 한 치의 허투름 없이 설계되었다. <킹덤>의 좀비 분장은 전체적으로 세 가지 톤으로 나뉜다. 첫째, 감염 초기 단계. 아직 살점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핏줄이 터지고, 입술과 피부색이 점점 창백하게 변한다. 둘째, 중기 단계는 살점이 부패하면서 균열이 생기고, 이가 드러나며 눈동자에 혼탁이 낀다. 셋째, 감염 말기. 완전히 시체처럼 마른 얼굴, 썩은 살이 드러나고 몸 전체가 괴사한 상태.
이처럼 디테일한 단계별 메이크업은 촬영장마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되었으며, 좀비 한 명당 최소 2시간, 복잡한 경우에는 4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CG로 대체할 수도 있었지만, 제작진은 직접 얼굴에 손으로 분장을 올리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 조명에 따라 질감이 살아 있고, 실제 피지가 말라붙은 것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운 효과가 탄생했다.
또한, 이 메이크업은 단순히 시각적 공포에 머무르지 않는다. 조선 시대라는 배경과 맞물려, 각 좀비가 살아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암시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예를 들어 농민 출신 좀비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 톤과 손등의 굳은살 표현이 강조되고, 병사 출신 좀비는 칼에 베인 흔적과 갑옷 자국이 남아 있다.
결정적으로 <킹덤>의 좀비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괴상하게 숨을 헐떡이고, 씹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휘청거린다. 이 소리는 실제 사람이 헐떡이는 숨소리를 100번 이상 녹음해 만든 음향 디테일이다.
이렇듯 <킹덤>의 좀비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조선의 시대성과 문화, 민중의 고통을 상징하는 '상처 입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이 한국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문화적 디테일과 정서적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전통 의상과 공간이 만든 낯선 긴장감
좀비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조선 후기의 서민 복식이다. 흙탕물에 젖은 저고리, 찢어진 두루마기, 해어진 치마. 생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옷차림이, 죽어서 좀비가 되어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의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계급과 생애를 암시하는 장치다. 병사 좀비는 군복에 피가 말라붙어 있고, 민가에서 나오는 좀비는 누더기 옷차림을 하고 있다. 특히 산골짜기에서 집단으로 몰려나오는 장면에서는, 누가 생전에 농부였고, 여인이었고, 아이였는지 모두 드러난다. <킹덤>은 이 의상 디테일을 통해 역사적 현실감까지 재현한다. 가난하고 병든 조선의 민낯, 백성의 삶의 무게가 의복에서부터 느껴진다.
반면 세자 이창과 관리들은 양질의 갑옷과 비단 옷을 입고 있다. 좀비들과 대비되는 복식은 권력자와 피지배자의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 차이는 단지 미장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 전체 주제인 ‘백성의 고통과 지배층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메타포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궁궐, 불타는 성곽, 좁은 기와집 골목. 이 모든 공간은 단지 무대가 아니라, 공포를 증폭시키는 프레임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전통 건축인 한옥은 개방적이고 시선이 트여 있기에 공포감을 주기에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킹덤>은 기둥 사이, 문 틈, 어두운 처마 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좀비를 통해 열린 구조를 오히려 공포의 도구로 사용한다. <킹덤>의 미장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은 무대이며, 그 위에서 공포는 더욱 날카롭게 살아난다.
시대 배경과 음악,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킹덤>의 비하인드
<킹덤>의 시대적 배경은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지만,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성리학 중심의 정치, 왕실과 중전의 대립, 사대부 중심의 구조, 흉년과 민란, 전염병 창궐. 이 모든 것은 실제 조선 후기의 역사적 요소와 맞물린다. 특히 <킹덤> 시즌 1에서 묘사되는 굶주림과 ‘거짓된 권력자’의 모습은 동학농민운동 이전의 현실과 닮아 있다.
음악 역시 주목할 만하다. <킹덤>의 사운드트랙은 전통 국악의 장단과 서양 오케스트레이션이 융합되어 있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는 북소리와 징이 겹쳐지고, 슬픔이 담긴 장면에서는 대금과 해금의 음색이 조용히 울린다. 이러한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정서를 깊게 만든다. 좀비가 몰려올 때 울리는 북소리는 마치 전쟁을 알리는 징처럼, 시청자의 심박수를 따라잡는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비하인드가 있다. 좀비 역할을 맡은 단역배우들은 3개월간 연기 훈련을 받았고, 대부분 무용과 연극 전공자였다.
좀비 분장은 1인당 약 3시간 이상 걸렸으며, 한 장면 촬영에 좀비 100명 이상이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생사초는 실제 존재하는 약초가 아니라, 드라마를 위해 새롭게 설정된 가상의 식물이다. 하지만 이 생사초의 비주얼은 한국 전통 한약재를 참고하여 디자인되었다.
궁궐과 성곽은 대부분 세트장이 아닌 실제 고궁과 촬영지에서 찍었으며, CG는 최소화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고증과 장인 정신이 더해졌기에, <킹덤>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K-좀비물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가 담긴 작품’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킹덤>은 좀비와 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성공적으로 융합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성공의 배경에는 치밀하게 설계된 미장센,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녹여낸 제작진의 감각이 있었다. 좀비의 움직임 하나, 의상의 찢어진 결 하나, 음악의 음색 하나까지. <킹덤>은 그것들을 단순한 설정이나 장치가 아닌, ‘말 없는 메시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킹덤>을 보면서 무서워하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끼고, 손에 땀을 쥐면서도 이상하게 감동받는다. 그것이 바로 문화가 장르를 지배하는 순간이며, 콘텐츠가 예술이 되는 지점이다. <킹덤>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조선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한국의 정체성과 장르의 가능성을 동시에 펼쳐낸 하나의 거대한 문화 프로젝트다.
그 좀비들은 단지 피와 살을 탐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몸짓과 복식, 분장, 음악 속에는 우리가 가진 역사와 문화, 기억이 배어 있다. 그걸 알아챘을 때, <킹덤>은 한 편의 ‘사극 좀비물’이 아니라, ‘한국 문화 콘텐츠의 진화’로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