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는 흔히 말하는 '법정 드라마'나 '복수극'의 문법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 작품이었다. 마피아 출신 변호사가 주인공이라는 설정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그가 법이 아닌 ‘마피아식 정의’로 악을 쓸어버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 K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다.
<빈센조>는 tvN에서 방영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국형 블랙코미디 액션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 송중기는 기존의 착하고 정의롭기만 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냉혈하면서도 매혹적인 빈센조 카사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전여빈, 옥택연 등 주요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단지 화려한 설정과 액션, 연기력만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 권력과 법의 민낯,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살아남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해석이 <빈센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피는 물보다 진할까, 정의보다 두려울까? 한국에 온 마피아 변호사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마피아 출신 변호사, 정의를 말하다 – 빈센조 카사노의 두 얼굴
이탈리아 마피아의 고문 변호사로 살아온 빈센조 카사노는 겉으로 보기엔 냉정하고 우아한 수트 차림의 엘리트지만, 그의 내면은 철저하게 생존과 복수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그는 법의 허점을 꿰뚫고 있으며, 필요할 때는 법을 무기로 삼지만, 때로는 그 법을 과감히 무시하고 마피아식 해결 방식을 택한다.
한국에 온 이유 역시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금괴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금가프라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의 세계관을 흔든다. 처음에는 귀찮고 무능해 보였던 상인들 속에서 진짜 사람 냄새를 맡게 되고, 그들과 함께 바벨그룹에 맞서는 과정에서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공동체적 연대와 책임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가 바벨을 향한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 역시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상인들의 안전을 지키고 그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감정적 동요였다. 그렇다고 그가 착해지거나 법치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한국 사회의 법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정의를 가장한 권력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목격하며 더욱 냉혹해진다. 하지만 그 냉혹함은 이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빈센조는 단순한 마피아가 아니라, 냉혈과 따뜻함, 복수와 보호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품은 복합적인 인물로 변모한다. 그가 복수를 감행할 때조차도, 그 뒤에는 지켜야 할 존재들이 있고, 그 복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닌 '균형을 위한 폭력'이라는 아이러니한 정당성을 갖게 된다.
<빈센조>는 그런 빈센조의 내면을 세심하게 쌓아가며, 시청자로 하여금 “정의란 정말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든다. 그는 악을 악의 방식으로 처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인간다워지고, 자신만의 윤리 기준을 세운다. 그가 악당인지 영웅인지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이 너무나 불공정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조차도 선함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빈센조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그는 두 얼굴을 가졌지만, 그 이중성은 모순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자, 왜곡된 세상에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금가프라자, 웃음과 눈물의 공동체 –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금가프라자는 단순한 상가 건물이 아니다. 처음에는 빈센조가 금괴를 찾기 위해 정리해야 할 ‘장애물’에 불과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공간은 웃음과 눈물, 연대와 저항이 뒤섞인 특별한 공동체로 그려진다. 이곳 상인들은 처음엔 조용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둘씩 정체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무술 고수, 해커, 전직 정보요원 등 각자의 능력과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때로는 황당하고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특히 이들은 바벨그룹의 압력과 위협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서로를 지키며, 끝내 함께 싸우기로 결의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소시민의 저항'이다. 법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늘 뒷전이었지만, 금가프라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의를 찾아간다. 이 과정은 단순한 코믹 relief가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장치다. 빈센조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적인 감정을 깨닫게 되고, 그들 역시 빈센조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게 된다.
특히 바벨의 위협이 극에 달할 때마다 상인들이 보여주는 의연함과 유쾌함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머로 풀어주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이들은 영웅도 아니고, 대단한 능력자도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견고한 결속을 이룬다. 금가프라자는 결국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빈센조가 마지막까지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도, 단지 금괴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 깃든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빈센조>를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공동체 서사로 확장시킨다. 우리는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을 통해 웃고 울며, 현실에서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약자라서 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기에 당하는 것이다.
금가프라자의 유쾌하고 끈끈한 연대는 현실의 우리에게도 작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시대에 필요한 정의란 어쩌면 법이나 제도보다, 이런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싹트는 것일지도 모른다.
악을 응징하는 방식 – 법이 아닌 방식으로 되묻는 정의의 의미
<빈센조>가 가장 큰 화제를 낳은 지점은 ‘정의의 방식’이다. 이 드라마는 법적 절차나 제도적 대응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악을 응징한다. 바벨그룹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언론과 검찰, 법원까지 장악한 괴물 같은 존재다.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빈센조는 거짓을 꿰뚫고, 그들의 약점을 찔러 무너뜨린다.
그 과정은 잔혹하고 때로는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빈센조의 선택을 응원한다. 왜냐하면, 그가 싸우는 상대는 법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빈센조>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선한 방법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답을 내놓는다. 이 잔인한 역설이 바로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빈센조는 끝내 복수를 이뤄내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과 연대를 배운다. 냉혹한 마피아가 눈물을 흘리고, 소시민들이 정의를 외치는 이 기묘한 조합은 <빈센조>만이 가능한 독특한 문법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복수극’이지만, 동시에 ‘성장 서사’이며, ‘사회 풍자극’이기도 하다.
드라마 <빈센조>는 마피아라는 비정상적 배경을 내세우면서도, 한국 사회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법과 정의가 무력해질 때, 우리는 누구를 의지할 수 있을까. 국가도, 제도도 아닌 '마피아 출신 변호사'가 유일한 구세주처럼 보일 때, 이 드라마는 블랙코미디를 넘어 사회적 질문을 던진다.
빈센조 카사노는 히어로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안티 히어로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비틀렸을지언정,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억울하게 무너진 정의를 위해 싸웠다. 복잡한 시대에, 하나라도 분명한 목표와 거침없는 행동은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선물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 잔혹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를 응원했고, 그의 눈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리는 왜 빈센조를 응원했을까? 악당의 옷을 입은 정의, 그 아이러니한 위로에 감동한 건 아닐까? <빈센조>는 단지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우리가 느끼는 불의에 대한 분노, 무기력함,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을 대리해준 통로였다. 통쾌하고도 슬픈,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아이러니한 위로의 서사. 그래서 <빈센조>는 끝났어도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