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복수’와 ‘창업’,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출발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하나의 도시, 특히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과 매력을 문화적으로 풀어낸 드라마다. 그 중심엔 단밤 포차가 있다. 단밤은 단순한 포장마차가 아니다. 다양한 국적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과 에너지, 음악과 패션이 모두 녹아 있는 공간이다.
단순한 청춘드라마가 아닌, 이태원의 문화 지도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이태원이라는 지역이 가진 ‘혼종성과 다양성’이 단밤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나로 응집되고, 이는 드라마의 미장센, 레시피, 배경음악, 심지어 등장인물의 패션과 태도에까지 연결된다.
이번 글에서는 <이태원 클라쓰> 속 단밤의 레시피가 실제로 어디에서 구현되는지, 드라마가 어떻게 ‘이태원’을 문화적으로 재해석했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려 한다.
단밤 포차 속 요리들, 진짜로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
단밤 포차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하고 퀄리티 높은 메뉴 구성이다. 새로이와 마현이가 함께 개발한 메뉴는 단순한 안주가 아니다. 프렌치 요리 출신의 트랜스젠더 셰프 마현이 만들어낸 음식은 고급스러운 플레이팅과 함께 이태원의 ‘다문화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특히 극 중 자주 등장하는 삼겹살 숙주볶음, 해산물 크림볶음우동, 매콤치즈닭갈비, 프렌치식 함박스테이크 등은 실제로도 이태원의 여러 맛집에서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버터함박’이라는 곳은 극 중 마현의 레시피를 연상케 하는 고급 함박스테이크를 내놓는다. 부드러운 고기와 진한 소스는 극 중 단밤의 시그니처 요리 느낌을 그대로 재현한다. ‘오코노미야끼 전문점 혼네’에서는 새로이의 메뉴 개발 힌트가 되었던 퓨전 일식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 촬영지 중 하나였던 ‘망원동 서울포차’는 실제 단밤의 외관 모티프가 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단밤의 메뉴 구성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현은 “맛은 편견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요리사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실력을 증명하고, 토니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음식은 이들에게 생존의 수단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며, 그것이 단밤이 단순한 포차가 아닌 이유다. 이 감각은 실제로 이태원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들 속에서도 느껴진다. <이태원 클라쓰>의 요리는 이태원의 사회문화적 다채로움 그 자체다.
이태원의 패션, 음악, 분위기 – 청춘의 아이콘이 된 이유
이태원이라는 지역이 단순한 배경 그 이상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시각적·청각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먼저 패션. 조이서의 유니크한 스트릿 스타일, 박새로이의 단정한 블랙 코디, 김토니의 자유로운 믹스 매치 패션은 캐릭터들의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상징한다.
이태원은 본래부터 다양한 국적과 스타일이 혼재된 공간이기에, 패션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특히 조이서의 컬러풀한 헤어스타일과 오버사이즈 자켓, 박새로이의 변함없는 깔끔한 의상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서, 캐릭터의 가치관과 태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다음은 음악. 드라마에서 흐르는 OST 중 가장 유명한 곡은 가호의 ‘시작’이다. 이 곡은 박새로이의 삶 전체를 압축한 듯한 가사와 멜로디로, 드라마의 감정선을 명확히 만들어주는 핵심 장치였다.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위한 여행”이라는 가사는 새로이의 고단한 여정을 노래처럼 따라가며 시청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줬다.
이 곡이 삽입된 장면 대부분은 새로이가 위기를 돌파하거나 단밤이 성장하는 전환점에서 등장하는데, 특히 장회장에게 굴하지 않고 맞서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흐를 때의 감정 폭발은 지금도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또 다른 삽입곡 ‘Still Fighting It’은 새로이의 내면을 더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는 곡이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청춘의 한복판에 선 주인공이 얼마나 애써 무너지지 않으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노래다. 김필이 부른 ‘그때 그 아인(돌덩이)’은 새로이의 감정을 가장 깊이 건드리는 곡으로, 특히 “버텨야 하는 이유가 내겐 너무나도 많았죠”라는 가사는 그의 인생 전체에 대한 요약처럼 들린다.
이 OST는 방영 당시 음원 차트 최상위를 장악했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단지 분위기를 살리는 배경음악을 넘어서, 주인공의 감정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서브 주인공'이었다. 이처럼 <이태원 클라쓰>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캐릭터의 감정과 메시지를 정밀하게 구축해낸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의 실제 분위기를 반영한 연출도 눈여겨볼만 하다. 다양한 국적의 인물, 성소수자, 청년 창업자, 유학생까지 등장하며 드라마는 이태원의 혼종성과 에너지, 경계 없는 자유로움을 최대한 살려냈다. 밤의 풍경, 네온사인, 좁은 골목 사이로 이어지는 술집과 식당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부딪히는 사람들. 이태원은 단지 서울의 한 구역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상징이 되었다.
<이태원 클라쓰>를 둘러싼 트리비아 – 비하인드로 본 이태원의 상징성
<이태원 클라쓰>는 웹툰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화 과정에서 많은 문화적 디테일이 추가되었다. 대표적으로 단밤이라는 공간은 웹툰에서는 다소 평면적인 공간으로 그려졌지만, 드라마에서는 실내 인테리어, 조명, 테이블 구조 등까지 디테일하게 설정되며 ‘브랜드화’된다. 실제로 방송 이후에는 ‘단밤처럼 꾸미기’라는 인테리어 트렌드도 생겨났다. 어두운 원목 테이블, 따뜻한 조명, 오픈 키친 구조는 단밤의 상징 요소가 되었고, 이 구조를 모방한 포차나 카페들도 속속 생겨났다.
또 하나 흥미로운 트리비아는 ‘박새로이 컷’ 열풍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새로이의 단정하고 반듯한 머리스타일이 유행했으며, 심지어 ‘이발소 컷’이라는 이름으로 SNS 해시태그 트렌드가 형성됐다. 이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을 넘어, 새로이의 단단한 성격, 우직한 태도에 대한 동경이 시각적으로 투영된 결과였다.
<이태원 클라쓰>의 배경이 된 이태원 거리는 실제로 촬영 이후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극 중 ‘장가’ 본사로 나왔던 건물은 현재도 팬들이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었고, 단밤 외관으로 쓰인 가게는 내부를 단밤처럼 꾸며 팬들을 위한 포토존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 제작진은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출연진의 국적·성별·정체성에 대한 연출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토니의 흑인 혼혈 캐릭터는 실제 외국인 배우를 기용했고, 마현 캐릭터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조언을 받아 구성되었다. 이런 세심한 접근이 드라마를 보다 현실감 있고 진정성 있게 만든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이태원 클라쓰>는 '이야기'를 넘어 '현상'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태원이 있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단지 한 청년의 성공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도시, 음식, 스타일, 사람,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거대한 이야기다. 단밤 포차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사람들, 세상에서 밀려났던 존재들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모인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음식은 연결이 되었고, 음악은 마음을 꿰뚫었으며, 패션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인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한국 사회 속에서 가장 ‘개성 있는’ 동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공간, 차이를 틀림이 아닌 ‘존중’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상징한다. <이태원 클라쓰>는 바로 그 가능성을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줬다.
단밤은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가게들이 이태원 골목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단밤의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이태원 거리의 어느 가게에 들어가 조용히 “숙주볶음 하나 주세요”라고 말해보자. 어쩌면, 박새로이의 고집과 조이서의 패기, 그리고 단밤의 따뜻한 분위기가, 접시 위에 조용히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단밤은 끝났지만, 이태원은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