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한 남자의 신념과 분노,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사랑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단순히 청춘 창업 드라마나 복수극으로만 기억되기엔, 이 드라마는 너무나 섬세한 결을 품고 있다. 그 중심엔 박새로이라는 인물이 있다. 아버지를 잃고, 정의를 위해 스스로 세상과 등을 져버린 남자. 그가 선택한 고집스러운 길은 외로움과 고통으로 가득 찼지만, 그 끝엔 사람과의 연결, 사랑과의 화해가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인 새로이는 '신념이 만든 인물, 사랑이 완성한 사람'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새로이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사랑은 그 신념의 결을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 그 변화의 흔적은 명대사와 명장면,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박새로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고집에서 따뜻함으로, 분노에서 사랑으로 진화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나는 내 가치관을 지키며 살 거야” – 신념으로 세상을 밀어낸 남자
<이태원 클라쓰> 1회, 학교 폭력 가해자를 때린 박새로이는 선생님의 사과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다. “왜 제가 사과해야 하죠?”라는 그의 대사는 단순한 반항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과 가치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아버지의 교육, 즉 “소신 있게 살아라”는 말을 삶 전체에 새겨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 소신은 너무나 단단해서, 세상이 틀렸다고 말할 때조차 흔들리지 않는다. 학교를 자퇴하고, 경찰서에 가는 길에서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새로이의 신념은 불의를 참지 않는 정의감에서 출발하지만, 그 정의는 때때로 세상을 등지게 만들고, 사람과의 관계마저 끊어내게 만든다.
장가 회장의 권력을 거부하고 복수를 결심한 뒤, 새로이는 오직 자신의 원칙만을 믿으며 단밤을 일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 사람한테 무릎 꿇는 건, 아버지한테 죄 짓는 거야.” 이 대사는 아버지의 죽음을 개인의 감정이 아닌 ‘도덕적 정의’로 끌어올린 새로이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신념은 그에게 삶의 동력이고, 정체성의 뿌리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신념은 사람을 밀어낸다. 조이서의 호의, 동료들의 우정을 받아들이는 데도 그는 늘 느리고 무뚝뚝하다. '정의'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에게 '감정'은 늘 뒤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새로이는 ‘타인을 구원하려는 신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으로 변화한다. 단밤의 동료들은 그를 사장님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그를 이끌고 성장하게 만든 가족이었다. 그는 신념을 버리진 않았지만, 그 신념의 속을 사랑으로 채워가며 변화해간다. 그리고 그 변화는 조이서와의 관계 속에서 극대화된다.
“내가 널 좋아해요. 아주 많이요” – 사랑은 가장 느린 설득
박새로이와 조이서의 관계는 전형적인 로맨스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조이서가 새로이를 향해 호감을 표현할 때, 그건 단순한 사랑 고백이 아니라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사장님, 나랑 자면 안 돼요?”라는 대사는 파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 말 뒤에 숨은 조이서의 진심이다. 그는 단순히 마음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이의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이는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늘 한발 물러나 있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그가 그렇게 굳게 닫아둔 이유는 단지 과거의 상처 때문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감정을 접어두고 살아왔고, 그 모든 에너지를 복수와 생존에만 쏟았다. 감정은 그에게 사치였다. 사랑은 언제나 ‘나중’의 일이었다. 그래서 조이서의 고백은 늘 미뤄졌고, 거절당했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도 조이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새로이의 마음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물론 다가갈수록 밀려나고, 표현할수록 외면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는 새로이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 단단함은 언젠가 새로이가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새로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사랑이 결코 감정의 폭발이 아닌 ‘시간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새로이가 조이서를 받아들이는 순간은, 격정적이거나 극적인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다. 장회장 앞에서 무릎 꿇은 후,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그리고 전화로 말한다. “사랑해, 이서야.” 복수의 마지막에서 사랑을 선택한 남자. 그 한 마디는 복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고, 훨씬 더 깊은 설득의 결과였다.
이 장면은 박새로이라는 인물의 성장, 그리고 조이서라는 인물의 기다림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사랑은 결국, 가장 느리지만 가장 정확한 설득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 타인을 바꾸는 인물, 박새로이
<이태원 클라쓰>가 사랑받은 이유는 단지 박새로이 개인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주변 인물들을 변화시키는 기폭제이기도 했다. 최승권, 마현이, 김토니, 장근수까지. 모두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었지만, 단밤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 새로이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편견 없이 대했다. 그의 ‘정의감’은 누군가를 억누르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모두를 품는 우산이 되었다.
특히 눈여겨볼 인물은 마현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으로 상처받았던 그는 단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지 않고, 요리사로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맛은 편견이 없어요”라는 대사는 마현뿐 아니라, 새로이의 철학을 상징한다. 새로이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다만,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찾도록 묵묵히 길을 만들어줬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이는 ‘주인공’이자 동시에 ‘배경’이다. 그는 이야기의 중심축이지만, 언제나 앞에서 끌고 가는 리더라기보다는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동반자형 인물이다. 단밤에서의 그의 존재는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신뢰의 상징에 가깝다. 구성원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그를 의지하면서도 각자의 역할과 가치를 스스로 찾아간다.
최승권은 전과자에서 든든한 운영자로, 마현이는 숨어 지내던 요리사에서 트랜스젠더 셰프로, 김토니는 정체성의 혼란을 넘은 긍지 있는 직원으로 성장한다. 이 모든 변화는 박새로이가 ‘이끌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존중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입견 없이 잇는 그대로를 보는 새로이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시하지 않고 기다리고, 강요하지 않고 믿는다.
이태원 클라쓰가 특별한 건, 주인공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옆에 선 사람들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새로이의 존재는 단순한 한 사람의 성장 서사가 아니다. 그는 상처입은 청춘들이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의 중심축이며, ‘나 혼자 잘 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서는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청춘의 분노와 이상’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 중심에 선 박새로이라는 인물은, 신념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면서도, 그 신념 안에 사람을 담을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울지 못했고, 사랑 앞에서는 외면했지만, 결국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존재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정의는 느리지만, 사람과 함께라면 그 정의는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랑은 가장 오래 걸리지만, 가장 깊이 남는 감정이라는 것. 박새로이의 “사랑해, 이서야”라는 한 마디는 단순한 로맨스의 클리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며, 신념보다 더 깊은 감정의 완성이다. 신념은 흔들렸지만, 사람은 남았다.
<이태원 클라쓰>는 끝났지만, 박새로이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도, 누군가의 단밤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