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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실화 모티브 총정리-그때 우리가 외면했던 이야기들

by jadu79 2025. 6. 26.

드라마 <시그널>을 보다 보면 어쩐지 낯익은 감정이 스며든다. 단순한 수사물로 보기엔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고, 한 장면 한 장면이 현실의 기억을 건드린다. 그도 그럴 것이 <시그널>의 주요 에피소드는 실존했던 범죄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단순히 ‘모티브’에 그치지 않고, 사회가 묻어둔 기억을 꺼내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시그널>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우리의 현대사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시그널> 속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들과 함께, 그 사건들이 펼쳐진 시대의 문화적 풍경—패션, 음악, 사회 분위기까지 포함해—재조명해보고자 한다. 단지 무전기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게 아니라, 우리 기억과 감정을 되살리는 도구였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가 외면하거나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 속에서, 왜 지금도 <시그널>이 유효한지를 되짚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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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실화 모티브 총정리-그때 우리가 외면했던 이야기들

실제 있었던 그 사건들 – <시그널> 속 미제사건의 실체

<시그널>이 단순한 장르 드라마를 넘어선 이유는 바로 극 중 대부분의 사건이 실존한 미제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단순한 이야기의 긴장감을 넘어서, “이 사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라는 순간적인 충격과 실감을 경험한다. 대표적으로 가장 많은 시청자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다. 무려 10명의 여성이 희생된 이 사건은 한국 범죄사상 최악의 연쇄살인으로 기록되었으며, 범인은 30년 가까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그널>은 이 사건을 ‘경기 일산 연쇄살인사건’으로 각색했고,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 희생되는 장면 등은 실제 사건의 정황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됐다. 특히 이재한 형사가 용의자를 좇다가 허위 자백과 조직 내부의 무능, 권력의 개입으로 수사가 무산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안겼다.


또 다른 사례는 1999년 발생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다. 드라마 속에서 유사하게 택시기사가 승객에 의해 살해되고,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정황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실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당시는 운전자 보호장치도 없던 시절이었고, 범인의 동기도 너무도 비극적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피해자 유가족의 고통과, 가해자의 무자비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1991년 발생한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 역시 빠질 수 없다. 당시 9세 초등학생이 납치된 뒤 변사체로 발견됐고, 사건 해결까지의 과정에서 경찰의 무능과 언론의 선정성이 비판받았다. <시그널>은 이 사건을 드라마에서 한 소년이 유괴당한 뒤, 사건을 조작하려는 경찰 내부의 흐름으로 각색했고, 피해자 가족이 분노하며 경찰서를 찾아가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 발생했던 여학생 성폭행 후 사망 사건, 초등학생 연쇄 유괴사건 등도 각각 드라마의 개별 에피소드로 변주되었다. 드라마는 단순히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피해자들이 겪었을 법한 감정과 당시의 사회 분위기까지 촘촘히 재현해냈다. 특히 매회 사건이 바뀔 때마다 “당시엔 왜 해결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이재한의 수사를 통해 그 한계와 사회적 문제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드라마를 통한 반성의 기회’를 준다.


결국 <시그널>의 진짜 힘은 ‘팩트 기반 픽션’이라는 데 있다. 극적인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닌, 우리가 실제로 외면하거나 잊고 지냈던 현실을 드라마라는 형식 안에서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그널>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되새기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진심이 있었기에, 방영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 배경의 디테일 – 1980~90년대의 공간, 사람, 감성

드라마의 배경은 1989년부터 2015년까지의 한국 사회를 오가며 펼쳐진다. 특히 과거의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정확한 시대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우선 복식에서부터 그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이재한이 입는 낡은 트렌치코트와 갈색 가죽점퍼, 손목시계, 경찰 제복의 단추 디테일까지도 철저히 당시 스타일을 반영했다. 차수현이 과거 형사 시절 입고 다녔던 청바지와 맨투맨, 파마 머리 스타일은 90년대 여성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거리의 간판, 포장마차, 분식집 인테리어, 전화박스, 낡은 경찰서 사무실 등도 그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느낄 정도로 현실감 있게 구현됐다. 심지어 경찰서 회의실의 텔레비전 모양, 벽에 붙은 ‘정의봉사’ 구호 문구 하나까지도 고증의 결과였다.


음악 또한 중요한 시대적 장치로 쓰였다. 드라마 곳곳에 삽입된 BGM은 당시 유행했던 트로트, 포크, 발라드풍 멜로디와 잘 어우러지며 감정선을 자극한다. 어떤 장면에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가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재한이 피해자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문세’ 노래를 듣고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은 음악이 단순 배경음이 아니라 ‘기억의 열쇠’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고, CCTV도 드물던 시절이었기에 사건 수사의 방식도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일이 수첩에 메모하고, 필름 카메라로 증거를 남기며, 무전기로만 연락하는 방식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와 그 안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드러낸다. 그 디테일이 <시그널>을 단순히 시대극이 아닌, ‘살아있는 시간의 드라마’로 만든 핵심이었다.

 

시그널 속 트리비아와 비하인드 –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디테일

<시그널>에는 숨겨진 소소한 재미 요소들도 많다. 예를 들어 이재한이 늘 입고 다니는 낡은 재킷은 실제로 조진웅 배우가 요청해 오래된 의상 중에서 직접 골랐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캐릭터가 ‘시간 속에 멈춰 있는 인물’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배우의 해석이 반영된 결과였다.


또한 드라마 속 무전기 소리는 실제 90년대 경찰 무전기 녹음을 바탕으로 재현되었다. 제작진은 소리에 민감한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기계적 왜곡음’과 ‘전파 끊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사운드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외에도 박해영이 매회 수첩을 확인하며 사건 단서를 정리하는 장면은,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수사 노트를 참고해 연출된 것이다. 김은희 작가는 실제 미제사건 수사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조사 방식, 수사 패턴, 그리고 경찰 내부 분위기까지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그 디테일 덕분에 드라마는 사실감 넘치는 수사극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시그널> 속 주인공들의 이름도 상징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재한’은 ‘재(再)+한(韓)’, 즉 ‘한국의 시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고, ‘박해영’은 ‘해를 밝히는 영혼’이라는 뜻으로, 어둠을 걷어내는 인물의 상징이다. 이런 세세한 장치는 드라마를 분석하는 재미를 더해주며, 반복 시청을 부르는 힘이 되었다.


심지어 마지막 회에서 등장하는 ‘보관된 수첩’ 장면은, 실제 장기 미제사건 전담반에서 오래된 자료를 손글씨 수첩으로 정리해왔던 사례에서 따온 것이다.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청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건 드라마일까, 혹은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일까.”

<시그널>은 단순한 장르물도, 판타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이며, 잊으려 했던 현실의 얼굴이다. 무전기는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그 시대의 진실을 꺼내는 마이크였다. 이재한과 박해영, 차수현이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좇았듯,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진실들이 있다.


드라마 속 사건의 피해자들은 허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의 그림자였고, 그 가족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그널>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기록이다.


화려한 CG 없이도, 화려한 액션 없이도 이 드라마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옛 드라마가 다시 회자되는 시대, <시그널>은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다시 볼 때마다 다른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시간이 아니라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잊혀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야기’. 그래서 <시그널>은 끝난 드라마가 아니라,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