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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명대사와 장면으로 본 이재한 형사, 정의의 얼굴

by jadu79 2025. 6. 26.

드라마 <시그널>을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인물은 누구일까. 박해영의 고뇌도, 차수현의 단단한 중심도 강렬하지만, 시청자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재한 형사, 그 사람은 그냥 정의 그 자체였어.”


이재한은 드라마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무전기를 통해 현재와 소통하며 과거의 사건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역할이지만, 단순히 사건 해결만으로 이 인물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아니다. 그의 말투, 표정, 선택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신념과 사람을 향한 따뜻함, 그리고 권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자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 드라마의 질문에 살아있는 답처럼 느껴졌다.


이번 글에서는 이재한 형사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중심으로,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왜 그가 <시그널>의 핵심이자 ‘정의의 아이콘’으로 남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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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명대사와 장면으로 본 이재한 형사, 정의의 얼굴

“정의는 반드시 살아 있다” – 이재한의 명대사, 그 말의 무게

드라마 <시그널> 속 이재한 형사의 명대사 중 가장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 말은 단연 “정의는 반드시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으면”이다. 이 말은 단순한 대사 이상의 상징성을 가진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놓지 않았는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경찰 조직 내부에서 사건을 덮으라는 압력을 받을 때도, 언론과 윗선이 공모해 진실을 왜곡할 때도, 그는 그 말처럼 행동했다. 쉽게 타협하고 침묵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사건을 대할 때 그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단서 하나에도 집요하게 매달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동료들에게 외면당했고, 조직에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으며, 끝내는 ‘사라진 형사’로 기억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끝났다고 해서 그의 정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무전기와 수첩, 그리고 후배 형사 박해영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정의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이재한의 대사는 이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입증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힘을 가진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절은 매우 중요하다. 정의가 저절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끝까지 싸우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정의는 살아남는다. 이재한은 그 싸움을 홀로 해왔고, 끝내 다른 이들에게 이어지게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쉽게 정의가 패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재한의 이 한마디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다. 그것은 희망의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질문이다.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지킬 수 있느냐고. 이 말은 단순한 형사의 신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한 번쯤 붙들고 싶은 좌표다. 이재한은 그 좌표를 끝까지 놓지 않았고, 그것이 그를 단지 강한 형사가 아닌 ‘기억되는 정의’로 만든 것이다.

 

이재한의 정의감은 어디에서 왔는가 – 인간 이재한의 서사와 고독

이재한 형사의 정의감은 단순한 의무감이나 직업적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타고난 이상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끈질긴 현실주의자다. 정의를 말로 외치는 대신, 오랜 시간 외롭고도 고된 길을 걸어오며 그것을 삶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못했다. 조직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묵묵히 소신을 지켰다.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지만, 그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가 특별했던 이유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 정의를 지켜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실천해온 점이다.


이재한은 어릴 적부터 원칙과 책임감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자랐던 듯하다. 구체적인 가족사는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 속에서 가족보다는 ‘동료와 시민’을 더 우선시하며 사는 그의 모습에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과 그 방식에 대해 내면화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순간은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선배가 은폐와 조작의 공범이었다는 사실은 이재한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그는 진실을 밝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일어섰다. 이러한 반복된 실망과 배신 속에서도 정의를 향한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신념이 단순한 낙관이 아닌 깊이 있는 고뇌와 선택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말투도 투박했으며, 상사에게는 늘 미운털이 박힌 존재였다. 조직 내 정치에는 서툴고, 권력과 타협하는 방식도 몰랐다. 수사에서 실적보다 진실을 좇는 사람, 경찰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 이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영전이나 인정보다는 고립과 좌천이었다. 하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조차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가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싸움이 외롭더라도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그널> 속 이재한은 이상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도 인간적인 인물이다. 쉽게 감정에 휘둘리고, 상처를 받으며, 때로는 지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단단해졌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향해 걸었다. 이재한의 정의감은 타고난 성품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진짜 힘은 ‘살아남은 고통’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그는 외로웠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신념은 결국 무전기를 통해 박해영에게, 나아가 시청자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연대의 순간, 이재한의 고독은 비로소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 이재한이라는 한 사람의 서사는 단지 정의로운 형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뀐다.

 

명장면으로 보는 이재한의 존재감 – 기억되는 이유

<시그널>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그중 이재한을 상징하는 장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무전기 앞에서 그가 혼잣말처럼 말하는 장면이다. “듣고 있나? 지금 너, 잘하고 있는 거다.” 이 말은 현재의 박해영에게 건넨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처럼 들린다. 실패하고, 쓰러지고, 끝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순간에도, 그는 자신에게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차수현과의 마지막 장면이다. 과거에선 연인이었지만 미래에선 실종된 인물로 남게 되는 비극적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은 끝까지 재한을 믿고, 기다린다. 그리고 재한 역시 수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이들의 감정선은 뭉클하고 아릿하다.


마지막 장면은 진범과의 대면 후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는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진범에게조차 “너는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될 거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마치 정의의 최후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반어법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말한다. “이재한은 죽었지만, 그의 정의감은 살아 있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시즌2를 해달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한은 그저 이야기 속 캐릭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정신’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재한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정의로운 형사가 아니다. 그는 이 드라마의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자, 가장 외로운 신념가였다.
그가 선택한 길은 누구나 걷기 어려운 길이었다. 늘 손해 보고, 외면당하고, 결국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말과 행동은 박해영에게, 그리고 시청자에게 이어졌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믿음이, 누군가에게 이어질 때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그널>은 보여줬다. 이재한 형사의 정의감은 그 가능성의 불씨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 역시, 그 불씨를 이어받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했다. “정의는 반드시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 말은 단지 드라마 속 대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붙잡아야 할 신념이 아닐까. 이재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는 우리가 바라고 싶은 정의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