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 보면 사람보다 무서운 건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JTBC 드라마 <괴물>은 그 사실을 가장 처절하게, 가장 치밀하게, 그리고 가장 고요하게 들춰낸다. 겉보기엔 경찰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심리극에 가깝다.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는 많지만, ‘괴물’은 그 범죄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 죄책감, 망상, 믿음과 의심을 조각처럼 쌓아올리며, 시청자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처음엔 단순한 실종사건처럼 시작된 이야기. 그러나 그 안에는 과거의 미제사건, 권력의 부패, 가족 간의 상처, 친구의 배신까지, 무거운 질문들이 얽혀 있다.
이 드라마는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보다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당신이라면, 주변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본인은 괴물과 얼마나 닮아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기본 정보: 탄탄한 각본과 몰입감, 믿고 보는 제작진
<괴물>의 진가는 화려한 외양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에서 드러난다. 무리한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시청자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각본의 치밀함과 연출의 정교함 때문이다. 김수진 작가가 쓴 대본은 단단한 구조 위에 복선과 인물 간의 심리묘사를 촘촘하게 얹는다. 한 줄 한 줄 대사 속에 인물의 과거, 트라우마, 관계의 균열이 숨어 있어 한 번 봐선 다 느낄 수 없고, 두 번 보면 감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 이동식의 초반 대사는 얼핏 보면 평범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말들이 어떤 비밀을 암시했는지, 혹은 얼마나 복잡한 감정의 결과였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대사는 모두 김수진 작가의 필력에서 나온다. <마더>, <아는 와이프> 등 인간 내면의 상처와 회복을 다뤘던 전작을 떠올리면, <괴물> 역시 단순히 ‘범죄’만 다룬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어떻게 범인이 되었는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연출을 맡은 심나연 감독 역시 이 이야기를 단순한 범죄물로 소비되지 않게 만들었다. 인물들의 표정, 손짓, 멈칫하는 시선 하나까지 매 장면을 감정으로 연출한다. 음악과 조명도 절제되어 있고, 필요 이상의 감정적 자극 없이도 서늘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오히려 조용할수록 더 무섭고, 밝을수록 더 불안하다. 실제로 만양이라는 마을의 풍경은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 스며든 진실은 누구보다 잔혹하고 어둡다.
또한, 16부작이라는 호흡도 이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보탠다. 불필요한 러브라인이나 뻔한 클리셰 없이, 매 회차가 서사와 인물 심리의 깊이를 쌓는 데 집중한다. 특히 중반 이후에도 흐트러짐 없이 몰입감을 유지한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수의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것과 달리, <괴물>은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조각이 맞춰져 가며 ‘퍼즐 맞추는 쾌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괴물>은 단순히 “연기를 잘한 드라마”가 아니라, 모든 제작진이 같은 방향을 향해 뛰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누구 한 명의 스타성에 의존한 작품이 아닌,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 된 드라마. 그래서 <괴물>은 한 번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는 ‘잘 만든 드라마’로 기억된다.
줄거리 요약: 두 형사의 만남, 미제사건의 진실을 좇다
드라마 <괴물>은 경기도 만양이라는 가상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다. 이야기의 시작은 서울에서 내려온 엘리트 형사 한주원(여진구 분)이 만양 파출소로 전출되며 시작된다. 그는 겉으론 인사발령처럼 보이지만, 사실 숨은 목적이 있다. 20년 전 발생했던 이동식(신하균 분)의 여동생 실종사건, 그리고 그와 유사한 최근의 실종 사건 사이에 연결고리를 의심하고 내려온 것이다.
이동식은 당시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인물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눈빛을 꺼리고, 동료 경찰조차도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동식은 어딘지 모르게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미소 뒤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고,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한주원은 그런 이동식을 의심하면서도, 점점 그가 단순한 용의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은 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계속 부딪힌다. 한 명은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냉철한 이성으로 사건을 분석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과거와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한주원은 아버지가 유력 정치인이자 경찰 고위직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동식 역시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외톨이처럼 살아왔다.
그들이 마주한 사건은 단순한 실종이나 살인이 아니다. 피해자는 하나둘씩 늘어나고, 그들의 죽음은 특정한 패턴과 장소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과거 동생 실종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수사는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게다가,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신뢰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주원은 이동식이 정말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놓지 못하고, 이동식은 한주원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의심한다. 그들의 수사는 진실을 좇는 일이자,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된다.
수사가 깊어질수록 밝혀지는 건, 단순히 범인의 정체만이 아니다. 만양이라는 마을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과거의 죄와 침묵, 외면의 역사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각자 한 조각의 비밀을 쥐고 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시청자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결국 <괴물>은 하나의 미제사건을 통해 ‘진실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람은 타인을 얼마나 오해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드라마다. 이 모든 물음은 두 형사의 팽팽한 심리전과 공조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사건이 끝날 즈음, 시청자는 단순한 해답을 찾는 대신,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찜찜함과 아릿함을 안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의도한 진짜 결말일지 모른다.
감정과 해석: 괴물이 되는 과정, 괴물을 만드는 사회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야.” <괴물>을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의 무게를 느낄 것이다. 이 드라마는 누가 나쁜 사람인지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망가지고, 사회가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따라간다. 특히 인상 깊은 건, 모든 인물이 ‘이해할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악역이라 생각했던 인물조차 트라우마, 상실, 억압된 분노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선한 인물도 무기력, 방조, 침묵 속에서 괴물의 또 다른 한 조각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시청자에게 "나는 과연 다른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권력과 체면, 그리고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은폐와 왜곡은 현대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사기관 안에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고, 상사의 입김, 정치적 계산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덮는다. 괴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 무시하고, 외면하고, 침묵하는 순간 우리 안에 자라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 드라마는 ‘정의란 무엇인가’, ‘기억은 믿을 수 있는가’,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떻게 나뉘는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내던지며 철학적 깊이까지 도달한다.
<괴물>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추리도, 액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종의 심리 다큐에 가깝다. 그래서 보기에 결코 편하진 않다. 속도감 있는 전개 대신, 한 발 한 발 천천히 짚어가며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을 따라간다. 그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끝까지 따라간 사람은 이 드라마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시청자에게 돌아온다.
당신은 괴물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당신 안에는 정말 괴물 같은 마음이 단 한 순간도 없었는가? 마지막 엔딩까지 본 후에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운 작품. 하지만 그 무거움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위로가 된다면, 당신은 이 드라마와 연결된 것이다. <괴물>은 그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