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처음 보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라는 소재도 신선했고, 박은빈의 연기 역시 기대되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마음을 빼앗긴 건 뜻밖에도 ‘로맨스’였다. ‘로맨스’라 부르기엔 어쩌면 너무 조심스럽고, ‘우정’이라 하기엔 너무 따뜻했다. 바로 우영우와 이준호 이야기다.
누구보다 선을 지키며 다가가고, 누구보다 신중하게 마음을 열어주는 그 관계를 보며, 내 안의 어떤 감정도 자주 흔들렸다. 이건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글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와 이준호의 서사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이 관계가 왜 그렇게 뭉클한지, 명대사와 명장면을 통해 다시 짚어보며,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사랑의 본질’을 되새겨본다.
한없이 따뜻한 시선: 이준호라는 사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주 묻게 된다. “이준호 같은 사람… 정말 존재할까?” 이준호는 한바다 로펌의 송무팀 직원으로, 법정이나 현장 동행을 자주 맡는 인물이다. 우영우의 첫 출근 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며 선을 긋는 동안, 그는 유일하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저는 송무팀 이준호예요.” 그 순간부터, 이준호의 서사는 시작된다.
이준호는 우영우가 당황할 때마다 조용히 옆에 서 있다.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순간엔 문을 대신 열어주고, 고래 이야기로 대화가 길어지면 기꺼이 함께 들어준다. 눈치를 주지 않고, 대신 기다려주며, 대화의 맥락을 맞춰주는 그 모습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존중' 그 자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5화에서 우영우가 혼란스러워하며 말한다. “나 같은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안 되겠죠?” 그 말에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눈빛으로, 표정으로, 그의 모든 태도로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이준호라는 인물은 우영우를 ‘장애를 가진 동료’로 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건 우영우 그 자체, 특성보다 더 본질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이건 흔치 않은 시선이다. 드라마가 사랑받은 이유는, 바로 이 준호의 존재감이 ‘이상적’이라서가 아니라,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본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 그 아슬아슬한 경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로맨스는 우리가 흔히 보던 로맨스와는 결이 다르다. 우영우와 이준호,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호감’이 있고, ‘끌림’이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이 곧바로 사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두 사람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준호는 마음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따뜻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감정형 인물이다. 우영우가 처음 출근한 날, 누구보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넨 것도 그였다. 우영우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녀가 ‘이상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에도, 그는 이상하다는 말 대신 ‘귀엽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영우는 다르다. 그녀는 감정을 이성으로 해석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낄 때도, 그게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분석한다. 좋아하는 감정은 불안정하니까, 머릿속에서 안전한 해석을 내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관계는 계속해서 충돌한다.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멀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너무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러워진다.
특히 우영우는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여긴다. 그녀는 말한다. “나 같은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대사는 단순한 자기비하가 아니다. 자신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연애에 서툴며, 상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 말에 이준호는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고백보다 기다림을 택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조용한 동행으로, 우영우 곁을 지킨다. 그녀가 문 앞에서 멈추면 대신 열어주고, 대화가 어긋날 때면 끝까지 들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이준호 역시 우영우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때로는 그녀의 논리가 마음을 건너뛰고, 때로는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생긴다.
10화에서 우영우는 그런 이준호에게 말한다. “나는 데이트도 이상할 거고, 감정 표현도 못 하고, 이준호 씨가 나 때문에 힘들 것 같아요.” 그 말에 이준호는 담담하게 말한다. “힘들어도, 그래도… 나는 당신이랑 걷고 싶어요.” 이 장면은 <우영우> 전체 로맨스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 중 하나다. 사랑이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감싸안는 과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준호는 우영우와의 관계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이유로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영우는 결국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요?” 이 질문은 어쩌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안 맞고, 불편하고, 답답할 수 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나를 좋아할 수 있느냐는 것. 이 장면에서 이준호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우영우의 곁에 남는다. 그리고 그 행동이 곧 대답이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설렘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건 이해와 오해, 멈춤과 다시 시작의 연속이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더욱 감동적이다. 사랑은 때로 논리적이지 않다. 감정은 예측할 수 없고, 표현은 미숙하며, 이해는 어렵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보여준다. 사랑이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전해준다. 우영우와 이준호, 이 두 사람이 보여주는 서사는 바로 그 ‘가능성의 이야기’다.
명장면·명대사로 다시 보는 두 사람의 서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뛰어난 에피소드 구성도 강점이지만, 마음 깊이 남는 장면과 대사 덕분에 더 오래 회자된다. 그중에서도 우영우와 이준호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에피소드 7화: 우영우의 ‘감정’ 고백
우영우: “나는 이준호 씨가 좋다. 가까이 있고 싶고, 같이 걷고 싶다. 이건… 좋아하는 거 맞죠?” 이 장면은 우영우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에게 감정 표현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용기 내는 모습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에피소드 10화: ‘나는 괜찮아요’
이준호: “내가 힘들어도… 그래도 나는 당신이랑 걷고 싶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이 말은 어쩌면 우영우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너 때문에 힘들어’가 아니라, ‘힘들어도 괜찮아’라는 말. 조건 없는 애정이란 이런 것이다.
에피소드 14화: 멀어지려는 우영우
우영우: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 힘들어요. 이준호 씨가 나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준호: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으니까.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드러나는 건, 이준호의 감정이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 ‘편안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도 선택하려 한다.
이 명장면들은 단지 ‘감동적인 장면’이 아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 망설임, 진심의 무게를 온전히 담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공감하게 된다.
우영우와 이준호의 관계는 단순한 드라마 속 로맨스를 넘어선다. 그건 '이상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놓치고 있었던 '진짜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내가 이 사람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를 먼저 걱정하는 우영우.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이준호. 이 관계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더 절실하다.
서툴지만 진심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진심을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하나의 답처럼 남는다. 마지막 회에서, 우영우는 말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좋다. 나는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조용히 함께 걸어주는 이준호가 있다. 사랑은 어쩌면 그저, 함께 걸어주는 것일지 모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걷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전해주는 로맨스의 방식이다.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이상하지만 진짜인, 그런 사랑 이야기.